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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9

박물관이 작품을 소장하기까지

국공립 박물관의 소장 작품 기준은 무엇일까

히토 슈타이얼의 작품 ‘이것은 미래다(This is the Future)’ (2019). Courtesy of the Artist and Ulsan Museum of Art

프랑스혁명 이후 루브르 박물관을 대중에게 개방하면서 공공 박물관의 정의를 최초로 확립했다. 기득권이 공개한 사적 컬렉션을 추후 공공 컬렉션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 컬렉션, 유럽의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나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컬렉션이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떨치며 국위를 선양하는 스타 컬렉션이다. 박물관 소장품이 스타 컬렉션이 된 것은 미학적·예술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컬렉션의 힘에서 비롯했다. 미학적·예술적 가치는 울산시립미술관 서진석 관장이 밝힌 공적 컬렉션의 네 가지 조건, 즉 “미학적·예술적 가치, 사회적·역사적 가치, 경제적 가치, 정치적 가치” 중 하나다. 스타 컬렉션의 미학적·예술적 가치는 국제적으로 명망이 높아서,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 작가라고 하면 누구나 작품성을 인정하는 하나의 브랜드 가치를 만든다. 국내에는 현재 이렇게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박물관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아직 제도적으로 미학적·예술적 가치에 비중을 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건희컬렉션은 컬렉터 사후 공공 컬렉션으로 결정됐으니 별도로 생각하는 것이 맞겠다. 물론 해외와 비교하면 국내 박물관의 공공 컬렉션은 역사가 짧은 편이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등 주요 기관이 각각 그만의 방식으로 탄탄한 컬렉션을 구축하려 힘쓰고 있다.
지난 1월 개관한 울산시립미술관은 국내 최초로 독자적 컬렉션 제도를 운영한다. “박물관의 수준 높은 컬렉션은 막강한 국가 자산 중 하나다. 아시아 최고 컬렉션을 목표로 새로운 제도를 운영하겠다”라고 밝힌 서진석 관장은 “독일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Kunsthalle Düsseldorf) 관장 그레고어 얀젠(Gregor Jansen) 등 국제적 인사 10인 이상을 포함한 30명의 전문가로 작품연구제안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이 울산시립미술관의 소장품 구매를 심사하고 평가한다”라고 덧붙였다.





다양한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소장한 울산시립미술관 전경.

또한 울산시립미술관은 해마다 소장품 예산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기금 제도를 운영한다. 기금 제도가 있으면 좋은 작품을 빠르게 구입하는 데 유리하다. 올해 구입할 만한 작품이 없으면 기금을 내년에 사용할 수 있어 합리적이다. 기금을 활용해 커미션 작품도 소장할 수 있다. 소장품은 울산시립미술관의 개관 목적에 따라 ‘확장적 장르의 미디어 아트, 실험적 현대미술, 미래 미술관이 추구하는 미학적 성향을 갖춘 작품’을 기준으로 선정한다. 개관 이전에 이미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백남준의 ‘시스틴 채플’을 포함해 ‘거북’, ‘케이지의 숲’ 같은 대형 작품을 소장했다. 백남준의 작품을 소장하고자 그의 조카이자 작품 관리자인 하쿠다 켄(Ken Hakuda)과 관계를 개선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고도 알려졌다. 또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과 와엘 샤키(Wael Shawky)의 주요 작품을 소장해 해외 미술관의 대여 요청이 밀려들고 있다고. 규모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현재 어느 정도 기금을 확보한 상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도 구매와 기증을 통해 컬렉션을 구성한다. 다만 연간 예산으로 소장품을 구입한다는 점이 울산시립미술관과 다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구입 예산은 연간 49억 원 정도다. 소장품 구입과 기증은 모두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위원회와 다수의 회의를 거쳐 진행하며 작품의 독창성, 희소성, 시대성, 미술사적 가치, 완성도 등 평가 항목을 선정 기준으로 삼는다. 아마 작가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공공 컬렉션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일 것이다. 작품의 질적 수준이 미술 문화 발전과 미술 인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지, 또 구입 작품이 주로 대여를 통해 전시되는 점을 고려해 대중의 취향을 반영한 작품인지 등을 기준으로 구매한다. 예산은 연간 30억 원 정도, 구입 경로는 공모형과 제안형 등이 있다. 공모형은 연 1회 미술은행 홈페이지 공모로 이루어지며 1회 이상 개인전을 개최한 작가에 한해 직접 지원할 수 있다.
한편 서울시립미술관은 1년에 두 번 소장품을 구입하며, 1차 일반 공모는 3~4월에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받는다. 2차 공모는 하반기에 주제 공모나 미술관 학예직의 제안으로 이뤄진다. 소장품 선정 기준은 미술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 동시대 우수 작품, 컬렉션을 보강하고 강화할 작품 등이다. 해마다 변동 가능성이 있지만 올해 예산은 14억3000만 원이다. 서소문본관에 기증작 전시실 ‘천경자 컬렉션’과 ‘가나아트 컬렉션’을 상설 운영하며, 내년 남서울관에 ‘권진규 컬렉션’ 전시실을 개관한다. 유수경 학예연구사는 “소장품 전시는 미술관의 성격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며, 관람객에게 예술적·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준다”라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에서 영구 소장하면 전시나 출판물, 홈페이지를 통해 대중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다른 기관에 대여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난다. 더불어 작품을 안정적 환경에서 관리할 수 있다.
대중은 홈페이지, 출판물, 전시 등 다양한 경로로 소장품 정보에 접근 가능해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일상에서 가까이할 수 있다. 미술관 입장에서는 전시, 교육, 지속적 연구의 기반이 되는 작품을 공급받을 수 있다. 소장품 전시는 미술관이 작품을 수집해 연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작품의 미술사적·학술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박물관마다 소장품 선정 기준은 천차만별이겠지만 기관의 성격에 맞는 좋은 작품을 수집해 안정적 환경에서 관리하겠다는 목표만큼은 다르지 않다. 국공립 기관의 소장품은 작가에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제공하고 예술계에 다양한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이건희컬렉션이 국립현대미술관 컬렉션의 양적·질적 향상과 관람객 유치에 기여했듯, 박물관이 좋은 작품을 수집, 연구해 가치를 높이고 컬렉션을 잘 보존해 후대에 물려준다면 작가, 관람객, 박물관 모두 이롭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제공 울산시립미술관
이소영(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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