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에 담긴 계절의 풍요로운 맛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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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11

도자에 담긴 계절의 풍요로운 맛

신경균 작가가 평생에 걸쳐 우리나라와 중국 각지를 돌며 컬렉트 한 전통 도자기에 가을 절기의 맛을 담았다.

계절의 미를 시절에 담다
신경균 작가가 평생에 걸쳐 우리나라와 중국 각지를 돌며 컬렉트한 전통 도자기에 가을 절기의 맛을 담았다 도자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조선과 고대 중국의 그릇은 시대적 사조와 도공의 기술 가마 기법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와 질감 빛깔로 품격 있는 맛과 멋을 드러낸다 음식으로 계절을 향유하고 시간을 추억하는 방법을 그 시절 자연의 순환 그리고 도공의 고요한 열정과 함께 빚어낸 장안요의 가을 밥상에 담았다





맑은 송이탕과 생송이버섯
신경균·임계화 부부는 가을 송이를 꼭 맛보며 이 계절을 보낸다. 여름 끝자락부터 산속에서 맑은 흙을 비집고 살포시 솟아난 자연산 송이는 소나무의 정기가 배어 있어 비할 데 없이 풍부한 맛과 향을 머금고 있다. 바닷가를 낀 높은 산에서 나는 송이는 장안요 근처 대운산에도 자생하지만, 신경균 도예가는 이번 제철 밥상을 위해 송이가 많이 나기로 유명한 경주에서 두껍고 싱싱한 송이를 공수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송이는 손이 많이 갈수록 향이 사라지기에 간단히 요리해 향을 즐기는 것이 좋다고. 결대로 길고 도톰한 두께로 썰면 생율 같은 톡톡한 식감을 즐기기 좋다. 온후하고도 깊숙한 자연의 생생한 공기를 입안에 그대로 들이는 듯한 맛과 향에 지난여름의 시름이 아득해질 정도다. 장안요의 식탁에 오르는 생송이버섯에는 천일염을 넣은 올리브 오일은 곁들이곤 한다. 임계화 요리연구가는 참기름보다는 올리브 오일이 생송이버섯의 풍미를 배가한다고 귀띔한다. 무와 파뿌리, 다시마를 넣어 맑고 연하게 우려낸 육수에 송이버섯과 아삭한 가을 무를 나박나박 썰어 넣어 끓인 송이탕은 그윽한 향이 속내를 깊숙이 채운다.

생송이버섯을 담은 화형 접시는 중국 북송시대의 아름답고 희귀한 여요 청자, 송이탕을 담은 작은 대접은 남송시대 관요의 청자 화형 소완이다. 올리브 오일 그릇으로 활용한 것은 송원시대 균요의 거북각배.





삶도 음식도 세상의 이치다 살면서 배운 것을 따라가는 것 - 신경균 도예가
그저 시간의 이치에 따라, 절기마다 땅과 바다에서 나는 것을 그대로 살려 만든 집밥. 장안요의 풍성하고도 수수한 절기 음식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두 번의 계절이 지나고 세 번째 계절을 맞았다. 신경균 도예가, 임계화 요리연구가 부부와 절기마다 밥상을 함께 나누면서, 시간은 바람처럼 흘러가도 시절은 남는다는 진리를 체득하고 있다. 계절마다 다르게 부서지는 햇빛의 감도와 나뭇잎에 바람이 스치고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 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가는 풍경,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마음 깊이 남을 것 같다.





싸리버섯 닭가슴살볶음
야생 버섯인 싸리버섯은 밑동을 다듬어 끓는 물에 데친 뒤 길게 찢어 찬물에 담가둔다. 소금물에 데친 뒤 찬물에 담가 하루 이상 맑은 물이 될 때까지 바꿔가며 독성을 빼내야 한다. 짙으면서도 담백한 맛에 씹는 식감이 좋은 싸리버섯을 퍽퍽한 닭가슴살과 함께 볶으면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싸리버섯과 삶은 닭가슴살을 찢어 조선간장을 넣어 조물조물 무친 뒤 볶으면 맛있는 가을 보양식이 된다. 임계화 요리연구가는 여기에 잔파와 적·백양파, 편마늘, 청·홍고추를 넣어 볶았다.

중국 송대(宋代)에 최고 전성기를 누린 균요 접시와 주병에 음식과 술을 담았다. 청대(淸代) 고서에 “하늘의 조화와 도공의 솜씨가 만나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찬미한 기록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균요 도자기는 짙은 자색이 도는 청빛의 몽환적 색감과 자태를 지니고 있다.





고수를 곁들인 도토리묵과 호박죽
도토리묵은 빼놓을 수 없는 가을 별미다. 쌉싸래하면서 탱글탱글한 식감이 일품. 그냥 먹어도 좋고 따끈하게 구워도 맛있다. 임계화 요리연구가는 장안요 텃밭의 고수에 간장과 깨소금을 넣어 살살 무친 뒤 도토리묵에 곁들여 향긋하게 즐긴다. 간장에 쪽파를 송송 썰어 넣은 양념장을 얹으면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호박죽은 누런 호박과 당도 높은 밤 맛이 나는 단호박에 멥쌀가루를 넣어 걸쭉하게 쑨 뒤 팥과 밤, 호랑이콩으로 씹는 맛을 더한다.

도토리묵과 호박죽은 송원시대 용천요의 청자 전접시와 대접에 담았다. 용천요 청자는 아름답고 밝은 청록빛을 띤다. 양념장 그릇으로 활용한 흑유 찻잔은 송원시대 자주요의 천목다완.





호박 스테이크와 꽈리고추찜
신경균·임계화 부부는 더위가 한풀 꺾인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둥글둥글한 조선 재래종 동이호박을 스테이크처럼 구워 즐긴다. 끝물인 애호박은 수분이 적기 때문에 1.5~2cm 두께로 두툼하게 썰어 들기름이나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중불에 은근하게 구우면 더욱 달고 아삭하다. 쪽파나 고수를 다져 넣고 고춧가루, 조선간장과 양조간장, 참기름을 섞어 만드는 양념장을 올려 먹으면 소고기 스테이크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맛이 좋다. 끝물인 꽈리고추는 유기농 통밀가루에 버무려 김이 오른 찜통에 찐 뒤 한 김 식혀 쪽파와 다진 마늘, 조선간장과 양조간장, 고춧가루, 매실청, 참기름을 넣어 버무렸다.

호박 스테이크를 담은 용문 장식의 굽 높은 백자 접시와 양념장 그릇으로 활용한 술잔은 송원시대 정요의 도자기다. 꽈리고추찜은 북송시대 청자 접시에 담았다.





갈치호박조림
전어나 연어 외에는 이렇다 할 생선이 별로 없는 가을. 촬영에 들어갈 즈음, 신경균 도예가가 싱싱하게 펄떡이는, 은빛이 눈부신 제철 갈치를 공수해왔다. 끝물인 애호박을 2cm 정도 두툼하게 썰어 냄비에 깔고 다듬은 갈치를 얹은 뒤 다진 마늘, 조선간장과 양조간장, 고춧가루로 양념해 자작하게 조리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능이쇠고기볶음과 쪽파무침
가을에 맛볼 수 있는 또 다른 별미, 능이버섯. 장안요에서는 버섯 철이 되면 식구들의 밥상에도, 손님상에도 진한 향이 코를 자극하는 능이버섯을 올린다. 임계화 요리연구가는 결혼 후 신경균 도예가와 함께 송광사에 갔을 때 절간에 늘어놓은 이 검은 버섯을 처음 본 후 하루에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능이의 매력에 푹 빠졌다. 송이보다 향이 더 강하고 식감도 좋지만 독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한다. 구우면 소고기 맛이 나는 능이를 다듬은 후 쭉쭉 찢어 넣고 야들야들 부드러운 채끝살과 함께 볶으면 별미 중의 별미다. 통마늘과 어슷썰기한 대파, 은행을 넣은 뒤 양조간장과 참기름을 둘러 볶은 것. 여기에 곁들인 쪽파무침은 고춧가루와 간장, 매실청 등을 넣어 무쳐 가을에 파뿌리가 굵어지면서 단맛이 도는 쪽파의 맛을 맛깔스럽게 살렸다.

이 두 가지 음식은 송대의 대표적 백자인 정요 백자에 담았다. 정요 백자는 상앗빛이 도는 깨끗한 백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송이를 올린 닭 육수 소면 청방김치 산초를 넣은 솎은 무청나물
신경균 도예가는 진하고 그윽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 마당의 장작불에 큰 솥을 걸친 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닭백숙을 끓였다. 닭백숙 국물을 채반에 걸러 한 번 더 끓인 뒤 삶은 소면을 담은 그릇에 부은 다음 가늘게 찢은 송이와 송송 썬 파를 얹은 국수 한 그릇은 훌륭한 가을 별미다. 여기에 곁들인 푸른 이파리의 청방김치는 계절의 절묘한 흐름을 담은 식재료 본연의 묘미를 살린 음식이다. 8월 25일 경에 모종을 심은 김장배추를 수확하기 전 솎으면 배추 속이 더 꽉 차면서 잘 자라는데, 이때 솎은 푸른 이파리만으로 담근다. 같은 이치로 솎은 무청도 데쳐서 양념에 버무린 뒤 산초 가루로 마무리한 것. 산초 특유의 향을 더한 무청나물 또한 입맛을 살려주는 별미 중의 별미다.

소면은 송대의 철정요 대접, 청방김치는 북송시대 동구요의 화형 청자 접시, 무청나물은 오대(五代)의 월주요 용문 음각 청자 접시에 담았다.





가지전 삼치구이 청어묵은지
앞에 놓은 가지전은 여름 가지보다 좀 더 단단한 과육에 단맛이 도는 가을 가지를 어슷썰기해 천일염을 살짝 뿌린 뒤 유기농 밀가루를 묻혀 부친 것. 또 10월부터 살에 기름이 부들부들 오르기 시작하는 팔뚝만 한 삼치를 토막 내 지글지글 구워 담았다. 청어묵은지는 장안요에서 여름내 즐겨 먹던 청어김치보다 더 진하게 농익은 맛으로 가지전과 삼치구이 맛을 한층 돋워준다.

야외에 들고 나가기 좋은 낮고 투박한 소반은 장안요 소장품인 강원도 두리반이다. 음식을 담은 그릇은 조선시대 왕실 도자기를 주로 굽던 분원의 백자, 술병과 술잔 또한 조선시대 유물로 고흥 운대리 가마터에서 구운 덤벙 술병과 귀얄 술잔이다.

 

에디터 이정주(jjlee@noblesse.com)
사진 박우진
코디네이션 이혜림
요리·자문 임계화, 신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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