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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28

MZ를 위한 전통의 재해석

전통은 낡은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부산 전시를 소개한다.

전시장 입구의 이문을 넘어서면 가장 먼저 의복 문화를 조명한 첫 번째 섹션을 맞이한다. 사진 속 작품은 이경선 작가의 ‘조선, 구의’.

팬데믹 이후 온라인 공간, 가상현실, 메타버스 등 물리적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일상을 잠식했다. 새로운 기술이 선사할 또 다른 삶에 대한 기대도 잠시, 최근에는 오히려 오랜 문화와 전통 그리고 유산에 대한 관심이 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동시대 감각을 반영한 전통의 재해석이 자리한다. 전통문화의 역사와 맥락을 이어가는 동시에 보다 실용적이고, 감각적이며, 아름답게 해석한 작품이 개인 취향과 행위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의 니즈와 미감을 자극한 것. 이러한 시대적 현상과 구체적인 작품을 살펴볼 좋은 기회가 있으니, 바로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20주년 기념전 [CONNECTING 아름답게, 전통을 이어 일상으로]다.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오는 2월 13일까지 부산의 복합 문화 공간 F1963에서 열리는 전시는 2001년 창립 이후 아름다운 우리 것을 지키고 가꾸기 위해 아름지기가 전개한 일련의 활동과 전통문화를 재해석한 작품, 그리고 전통을 지키는 방법으로서 재해석이 지닌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문화 지킴이를 자처하는 아름지기 재단은 2002년 마을 공동체 문화 복원을 위한 정자나무 주변 정리 사업을 시작으로 현대사회 속 한옥의 가치를 돌이켜보기 위한 한옥 보존 및 운영 사업, 문화유산 안내 및 편의 시설 디자인 개선 사업, 궁궐 전각 정비와 내부 집기 정비 사업, 전통문화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 운영 그리고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 한국실 건립 사업까지 국내외에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가치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중에서도 2004년부터 시행한 기획 전시 사업은 ‘의식주(衣食住)’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전통문화가 현대인의 일상에 스며들 수 있도록 재해석한 작품을 끊임없이 선보여왔다. 매해 ‘의’와 ‘식’ 그리고 ‘주’ 문화를 번갈아 소개했는데, 그 횟수만 18회에 이른다.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는 기획 전시 사업의 연장선으로 지난 전시에 소개한 작품과 소장품을 선별해 한데 모았다. 90여 명의 작가가 제작한 4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이는 지난해 10월 통의동 아름지기 사옥과 북촌 안국동 한옥에서 열린 20주년 특별 기획전 [홈, 커밍 Homecoming]과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역대 최대 규모다.
전시가 펼쳐진 공간도 남다르다. 옛 고려제강의 와이어 공장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석천홀을 활용했는데, 약 620평 규모를 자랑한다. 2017년 개관 이후 시각예술 행사인 부산비엔날레와 오케스트라 음악 공연장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으로 성장했다. 그간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 전시를 위한 공간 컨디션은 물론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을 다루는 전시 주제와 동일한 결을 지닌 공간의 역사 그리고 아름지기 재단이 지역 후원자와 관람객을 처음 만나는 장소의 지역성까지 전시 공간에 얽힌 진중한 고민과 다양한 의미를 읽는 것도 전시를 관람하는 또 다른 재미다.





위쪽 아름지기가 기획한 지난 전시의 도록도 살펴볼 수 있다.
아래왼쪽 전통적으로 사용한 식기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오브제의 대비가 인상적인 세 번째 공간.
아래오른쪽 온지음에서 복원한 영조의 도포와 건축가 김현종의 ‘무-경계’(2020)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한편 ‘전통과 현대, 서로 다른 시대’, ‘머무르는 자리에 깃든 삶의 풍경’, ‘일상을 담는 그릇’, ‘전통의 현대적 활용’이라는 네 가지 섹션으로 구성한 이번 전시는 각각 의복, 거주, 식문화 그리고 아름지기의 실천을 뚜렷한 구조와 전개로 펼쳐 보인다. 전시장 입구에는 ‘동궐도’를 기반으로 창덕궁 연경당의 장락문(長樂門)을 재현한 이문(二門)을 설치해 본격적 전시 시작을 알린다. 이문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전시장은 의·주·식 문화 순서로 구분하는데, 이를 위해 와이어 공장이던 공간의 특성을 활용했다. 커튼처럼 수놓은 와이어 구조물을 가벽처럼 활용한 것. 특히 와이어 가닥 틈으로 앞뒤 작품을 비추는데, 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전통미와 현대적 재해석을 고루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전시 끝자락에는 민영환 국장례식 행렬 사진을 참고해 제작한 차일이 놓여 있다. 이는 출구로서 자연스럽게 관람객의 동선을 유도한다. 관람객은 대나무 다발 기둥, 삼베 차일장, 옻칠한 무명, 천장 높이에 설치한 조명 등 전통과 현대의 건축적 해석이 혼재하는 작품 속을 거닐며 지나온 작품과 전시의 의미를 고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한다.
구조적 전시 전개, 공간 활용과 함께 이번 전시에서는 확장된 통사적 시각으로 전통문화를 재해석한 점이 눈길을 끈다. 예컨대, 의복 문화를 소개하는 ‘전통과 현대, 서로 다른 시대’ 섹션에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조선시대 한복의 개념과 형태를 고려시대 그리고 고구려·신라·백제의 삼국시대까지 확장해 소개한다. 고구려 무용총(舞踊塚) 벽화에 기록된 무용수 의복에 나타난, 바지통이 좁고 엉덩이 부분이 삐죽 튀어나온 고유의 형태를 재현하는 동시에 수묵화가 김호득 화백의 붓 터치로 완성한 도트 무늬까지 겸해 현대적 감각을 놓치지 않았다. 나아가 패션 디자이너 정욱준이 전개하는 브랜드 준지(Junn.J)는 신라시대 주름 바지 백습고에서 영감을, 디자이너 한현민의 브랜드 뮌(Munn)은 안이 비칠 정도로 얇은 실크와 귀족적 실루엣이 돋보이는 고려시대 의상을 바탕으로 현대인이 일상에서 패셔너블하게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처럼 전시를 관통하는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주제는 주거 문화를 소개한 ‘머무르는 자리에 깃든 삶의 풍경’ 섹션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건축가 김현종이 한옥의 마룻바닥을 재해석한 작품 ‘무-경계’가 바로 그것. 검게 칠한 홍송(紅松)을 활용한 그의 작품은 한국 전통 건축 구조의 특징인 완만한 곡선을 현대적으로 반영해 입체감을 부여했다. 특히 바닥을 하나의 가구로 인식하고 모듈화를 적용해 다채로운 조합과 쓰임이 가능하도록 제작했다. 실제로 전시장에 놓인 그의 작품은 관람객이 앉을 수 있고, 자신만의 모듈로 새롭게 조합할 수 있다. 전통을 새롭게 해석해 동시대에 걸맞은 또 다른 가능성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전통을 지키는 방식은 달라졌다. 보존, 유지, 보수를 통해 옛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전통을 지킬 수 없다. 시대 요구에 걸맞게 전통문화를 끊임없이 해석하고, 시공간을 넘어 모든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전통을 지키는 방법이다. 아름다운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한 ‘재해석의 힘’을 느껴보자.





거주 문화를 다룬 전시의 두 번째 섹션.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이정훈
사진 여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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